8일, 한국 동아시아재단과 중국 판구연구소가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 체제 구축에 대한 한·중 협력'을 주제로 베이징에서 개최한 한·중 전문가 토론에서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는 북한 편을 들고 중국 측은 "북한을 믿기 힘들다"고 하는 진기한 풍경이 펼쳐졌다.

이날 토론회에서 위홍쥔 전 공산당 대외연락부 부부장은 "북한은 미국을 상대로 원하는 생존 조건을 얻지 못하면 (핵 문제에서) 후퇴·역행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장롄구이 중앙당교 교수도 "지금까지 북한이 취한 조치들은 핵 포기가 아닌 핵 동결 차원일 뿐이고 미래 핵 사용에도 전혀 문제가 없다는 점에서 진정성을 믿기는 시기상조"라고 했다. 그는 "한·중이 지혜를 모아 북한이 꼼수를 못 쓰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주펑 난징대 국제관계원장도 "한국이 김정은의 꼼수에 넘어갔다는 시선도 있다"고 했다. 이펑 판구연구소 이사장은 "(한국이) 너무 급하다"며 "성급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에 한국 측 참석자인 문정인 특보는 "북이 비핵화 의지가 없고 핵을 보유하려고 한다고 자꾸 얘기하는 건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며 "워싱턴·베이징이 부정적인 가정이 제일 많다"고 주장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일 북한 국무위원장이 비핵화 의지를 명백히 밝혔다고 했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김 위원장과 세 차례 만나 의지를 확인한 것 아니냐"며 "북한도 풍계리 핵실험장을 완전 폐기하고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 의사를 밝히는 등 과거와 다르다"고 주장했다.

문 특보는 또 "북한 지도자의 말을 믿고 여건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며 "11월 말 아르헨티나 G20(주요 20국) 정상회의 때 시진핑 주석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북한이 전향적으로 나오므로 대북 제재 완화를 전향적으로 검토해달라'고 한 말씀 해주시면 좋겠다"고 김정은에 대한 믿음을 요구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통일외교안보특보인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는 최근 발간한 대담집 ‘평화의 규칙’에서 “북한과의 협상마다 ‘CVID를 집어넣었느냐’를 따져 묻는데, 핵 문제 해결이라는 본질에는 관심이 없고 그걸 촉구하기 위해 만든 슬로건에만 매달리는 우스꽝스러운 일”이라면서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는 대단한 원칙이나 국제적 합의가 있어서 나온 표현이 아니다. 일종의 슬로건이다.”라고 적어 논란이 일고 있다.

문 특보는 “CVID는 2003년 조지 W 부시 행정부 당시 존 볼턴 미 국무부 군축 담당 차관의 밑에 있던 마크 그룸브리지 보좌관이 만든 용어”라며 “왜 미국의 예전 정부에서 일방적으로 내건 용어 하나가 모든 판단 기준이 돼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CVID는 ‘Dismantlement’ 즉 만들어놓은 핵무기나 시설의 해체 또는 폐기를 말하는 건데, 이번에 북미가 합의한 비핵화는 ‘Denuclearization’으로 훨씬 더 포괄적인 개념”이라며 “이번 (싱가포르 회담의)합의가 절대로 낮은 수준이 아니다”라고 변호했다.

문 특보는 미북 정상회담 성과에 대해 인색한 평가가 나오는 것과 관련해 “기존 진영 논리나 패러다임으로는 지금 벌어지는 상황과 사태 진전을 설명하기도 이해하기도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문가라는 사람들이나 관료, 의회 그리고 적지않은 언론이 회담 결과에 비판적이었다”면서 “재미있는 것은 이런 비판의 선두에 이전까지 비교적 전쟁보다는 외교로 북핵 문제를 풀어가자는 입장이던, 민주당을 비롯한 이른바 리버럴 진영이 서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김정은 위원장의 승리 아니냐, 미국이 너무 양보한 거 아니냐’는 질문이 계속 나오던데 참 답답하다. 그 자체가 철저히 대결적이고 냉전적인 질문”이라고 날을 세웠다.

문 특보는 또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연합중단 발언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역지사지를 많이 하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며 “이전 미국 대통령들은 ‘한미 연합훈련은 북한의 군사적 도발에 대응하기 위한 훈련’이라는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으로 ‘아 우리가 하는 훈련이 저들에게는 군사적 긴장을 높이고 침략 위협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구나’하고 북한의 입장을 생각해본 것”이라고 평가했다. 

문 특보는 북한 비핵화 프로세스가 “행동 대 행동 원칙으로 갈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이쪽에서 하나하면 저쪽에서도 하나하고, 그런 식으로 진행될 것이다. 가령 영변 핵시설을 없애는 대신 과거처럼 경수로를 지어달라고 지원 요청을 할 가능성이 상당히 많다”는 게 그의 전망이다. 참고로 그의 바램(?)은 대부분 이뤄졌다.

그는 아울러 미북간 평화협정보다 실질적인 경제협력과 투자가 평화를 보장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종잇조각에 불과한 조약과 협정보다는 이를테면 평양을 비롯해 북한의 주요 도시에 맥도널드와 스타벅스가 들어가고, 미국과 일본, 유럽의 관광객 수만명이 북한을 여행하는 상태가 훨씬 더 전쟁을 예방하고 평화를 담보해준다”고 강력히 희망했다.

미군 유해 송환에 대해선 “미국과 베트남의 관계 개선도 처음엔 베트남전 사망 미군 유해 발굴 문제로 시작했다”며 “결국 이것이 계기가 돼 베트남과의 관계가 호전되고 양국 수교로 가게 된 역사적 경험이 있다”며 미북 관계 개선의 호재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베트남은 '적화통일' 됐다는 사실은 적지 않았다.

핵과 함께 북한 문제의 한 축을 이루는 인권과 관련해선 “미국 쪽 요구를 일거에 다 맞춰 줄 수는 없겠지만 대표적인 한두가지는 적극적으로 응하고 나서야 한다고 본다”며 “예컨대 가장 많이 지적되는 정치범 수용소 같은 경우, 실태를 공개해도 된다”고 북한을 대변하듯 적었다. 그는 이어 “외부에 공개하지 않으니까 자꾸 북한에 정치범이 20만명이 있다느니 이런 억측이 돌고 의심을 사는 것”이라며 “제가 보기엔 이건 터무니없는 숫자”라고 북한을 변호했다.

‘강력한 경제 제재로 북한 체제는 붕괴 직전’이라는 일각의 관측에 대해선 ‘그 정도는 아니다’고 변호했다. 그는 “지금처럼 제재가 계속되면 정치적으로 활용 가능한 자원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면서도 “아직은 그 임계점과는 거리가 있어서 당분간 가까운 시간 내에 북한 정권의 내구성에 문제가 생길 거라고 보진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그간 핵과 경제를 병진하느라 힘들었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경제에 매진할 수 있고 김정은 위원장은 국제 무대에서 주목받는 정상적인 지도자가 됐다”고 추켜세웠다.


27일, 제주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주포럼에서 동아시아재단 주최 ‘정상회담 이후:한반도 비핵화’ 세션에서 북한이 요구하는 체제보장이 구체적으로 어떤 조치를 의미하는지 묻는 질문에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가 “‘3대 세습 수령제’와 ‘사회주의 경제 체제’, ‘주체경제’를 인정해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문 특보는 “결국 그들이 말하는 것은 북한 3대 수령제,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인정해 달라는 것이고, 그 인정은 국제적 규범에 따른 인정”이라며 “주권보장과 내정불간섭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문 특보는 “미국에서는 이것을 잘 이해하지 못해 3대 세습제나 주체경제체제를 수용하기 상당히 어려운 것이고 그래서 북한에 대한 퍼블릭캠페인을 하는 것인데, 그런 것을 중단시켜달라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북한의 요구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유엔헌장 등 국제규범에 따른 원칙들인 것 같고 특별하게 북한 체제를 보장해달라,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열린 제주평화연구원 주최 ‘한미 특별대담: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세션에서도 비슷한 질문에 문 특보는 “김정은 정권의 생존 보장이 아니고 국제규범에 따라 미국이 북한에 대해 내정문제에 간섭하지 말고 수령체제나 북한의 리더십 제도, 사회주의 경제를 폄훼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요구하는 체제 안전 보장의 군사·정치·경제적 측면에 대해서도 문 특보는 “군사적으로는 계속 분명히 말해온대로 전략자산 전개나 재래식·핵 관련 위협을 하지 않는다는 약속, 정치적인 내정 불간섭, 경제적 보장을 의미할 수 있다면 세계은행이나 아시아개발은행 등에 가입할 자격을 인정해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 특보는 “북한이 원하는 것은 굉장히 대단한 것이 아니고 주권국가로서 인정해달라는 것인데 북한의 의도가 북한 밖에서는 잘 이해되지 않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문 특보는 “이런 정치적, 경제적 보장은 북한이 비핵화를 한다면 제공할 수 있는 것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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