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가치관은 다르다. 그렇기에 가치관 문제에선 누구도 누구에게 "이건 옳다. 저건 틀렸다."라고 단정지어 말하거나 강요할 순 없다. 이미 그러한 시대가 아니다. 그러나 자유라는 비교적 넓은 개념으로 접근했을 땐 얘기가 달라진다.

그렇다면 자유란 무엇이고 왜 얘기가 달라질까? 우선 자유란 내가 믿고 싶은 것을 믿을 수 있는 종교적 자유.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는 자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자유.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는 자유. 등 기본적인 자유부터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일상 탈출을 시도해 누릴 수 있는 자유(술. 담배. 사교모임 등)도 있다. 얘기가 달라진단 말은 바로 이러한 기본적 자유를 탄압했을 때를 두고 한 말이다.

세상엔 그 자유가 개인의 탐욕에 의해서 저지 당하는 경우도 더러 있고, 더 나아가 국가라는 거대한 집단으로 부터 제약받는 경우도 있다. 전자의 경우 투지만 있다면 노력 여하에 따라 극복할 수 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겠거니와 아무래도 국가의 제약 보단 낫다.

그런데 요즘 남.북간 평화 협정으로 인해 대한민국 내 자유(국가 단위의 자유)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대부분의 언론과 국가 기관들은 마치 이 땅에 평화가 도래한 것 처럼 떠들며 움직이고 있다. 종이에 쓴 평화협정이 전쟁의 공포로 부터 해방시켜 주었다고 믿는 듯 하다.

과연 그럴까? 에리히 프롬이 집필한 '건전한 사회'란 책은 인류 역사에서 평화조약이 약 8000건이 체결됐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 효력이 지속되기는 평균 2년 정도에 불과했고, 평화란 단어에 속은 말로는 비참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렇다. 평화협정은 찢어버리면 그만이고 그저 종잇조각에 불과하다. 애초 평화를 위협했던 포식자들 논리에서 이러한 것들은 격식차리기에 불과할 뿐이다. 이렇듯 슬프지만 동화속 이상과는 달리 평화는 국가력에 따라 유지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거대 담론으로 들어가는 듯 해 불편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부분이 내가 말하고 싶었던 자유에 관한 것이다. 깊이 들어가 사람의 사는 이유가 제각각 꿈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꿈에는 가정의 행복부터 작은 가게를 차리는 것과 사회적 성공 등 종류가 다양하다. 그러나 분명한 건 그것을 이룰려면 자유가 지켜져야 한다.

그래서 끝으로 내가 정말 좋아하는 패트릭핸리의 말을 곱씹으며 글을 마치려 한다. 때는 1775.3.23 리치먼드 세인트 존 교회, 미국 독립운동가 패트릭 헨리는 영국의 아메리카 식민지에 대한 탄압이 강경해지자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은 평화, 평화를 거듭 외치고 있지만, 평화는 없습니다. 전쟁은 실제로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다음에 북쪽에서 불어올 강풍은 우리의 귀에 무기가 맞부딪치는 소리를 들려줄 것입니다! 우리의 형제들은 이미 전장에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한가하게 시간을 죽이고 있는 겁니까? 여러분이 바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가진 것은 무엇입니까? 쇠사슬을 차고 노예가 되어가고 있는데도, 목숨이 그리도 소중하고, 평화가 그리도 달콤하단 말입니까? 전능하신 신이시여, 길을 인도해주십시오. 여러분들이 어떤 길을 선택할지 모르지만, 나는 이렇게 외칩니다.


‘내게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이 말은 미국이 영국으로 부터 독립 전쟁을 하게 만든 방아쇠로 작용했고, 지금의 미국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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