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자유한국당의 서울 광화문광장 사용을 불허했던 서울시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기리는 행사에는 기존 행사까지 밀어내며 광장을 내준 것으로 확인됐다.


● 정치적인 목적을 가진 집단의 사용은 안된다더니... 유시민, 김어준,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장 등이 참여하는 좌파성향 정치콘서트엔 허용? ●

앞서 지난 1일 박원순 서울시장은 자유한국당이 광화문광장에 천막을 치겠다고 하자 '서울시장이 갖고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며 제동을 걸었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을 기리는 행사를 위해서는 서울시에서 나서서 같은 날 광장 사용을 사실상 허가해줬던 단체에 "다른 날로 옮기라"고까지 한 것이다. 이를두고 모든 시민의 공간인 광장 사용에 서울시가 이중 잣대를 적용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에 따르면 노무현재단(이사장 유시민)은 지난 3월 14일 광화문광장 사용 신청서를 냈다. '5월 13일 월요일부터 1주일간 광화문광장 북측 광장과 중앙 광장 전체를 쓰겠다'고 했다. 오는 23일 노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앞두고 열리는 '시민문화제'였다. 말은 토크 콘서트지만, 김어준씨가 사회를 보고 주최자인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양정철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장 내정자 등이 참여해 정치성향이 좌파인 인물들로 꾸려서 행사를 열 예정이다.


● 서울시 "유시민의 노무현 재단 사용하게 해줘야된다. 날짜변경하라", 민간단체 "왜 변경해야되나?" ●

그러나 재단이 희망하는 시기에는 다른 행사가 이미 잡혀 있었다. 5월 17~19일 전북 남원시와 민간단체 A가 공동으로 여는 문화 행사였다. 해당 행사는 지난해에도 광화문광장에서 열려 1300여명이 참여했다. 남원시는 행사 준비를 위해 지난 2월 15일 서울시에 협조 요청 공문을 보냈다. 노무현재단이 신청서를 내기 한 달 전이다. A단체 관계자는 "협조 공문을 보낼 무렵 서울시청에서 담당자를 만나 구두 약속도 받았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행사 날짜부터가 서울시와 함께 조율해 정한 것"이라며 "시 관계자가 '혼잡이 예상되는 어린이날 주간과 부처님오신날 주간을 피해 셋째 주에 하는 게 좋겠다'고 해서 우리가 거기에 맞췄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단체 측에서는 5월 셋째 주말에 행사를 연다고 홈페이지에 공지했다.

'광화문광장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에 따르면 광장 사용은 시민의 문화 활동과 여가 선용에 도움이 될 경우 가능하다. 날짜가 중복되면 신청하는 순서에 따라 허가된다. 다만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행사는 우선권을 갖는다. 남원시 행사는 다른 행사보다 우선권을 가질 수 있다. 신청서는 60일 전부터 제출 가능하다. 그러나 60일로는 준비 기간이 빠듯해 상당수의 경우 이보다 앞서 시에 협조를 구하고 날짜를 조율한다. 남원시와 A단체의 행사도 이에 해당한다.

문제는 A단체가 사실상 허가를 받아둔 날에 노무현재단이 사용을 신청하면서 불거졌다. A단체 관계자는 "3월 중순에 서울시에서 날짜를 바꿔달라고 했다"며 "서울시에서 원칙과 절차를 생략하고 약속을 어겼기 때문에 응하지 않고 버텼다"고 했다.


● 민간단체 날짜 변경하지 않고 버티자, 서울시가 남원시 통해 회유해... '반협박?' ●

A단체의 버티기는 얼마 가지 못했다. A단체 관계자는 "서울시의 요청을 받은 남원시가 '협조해주라'고 여러 차례 연락했다"며 "남원시가 자금을 후원해주고 있기 때문에 날짜를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A단체 행사가 (노무현재단이 신청한) 그 날짜에 하기로 세팅이 돼 있어 양해를 구했다"며 "노무현재단 행사가 A단체 행사보다 더 중요하지 않으냐"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남원시가 2월에 보낸 것은 행사 협조 공문이었고, 사용 신청서는 아니었다"면서도 "A단체 행사가 잡힌 것은 인지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노무현재단이 해당 날짜를 얻게 되면서 A단체는 행사 일정을 4~6일로 변경했다. 시에서 "혼잡이 예상된다"며 피하라고 했던 시기다. A단체가 옮겨 간 기간에 예정됐던 다른 행사에도 불똥이 튀었다. 원래 5일은 전국 시·군 75곳의 농·수·특산물을 판매하는 '농부의 시장' 행사가 잡혀 있었다. 서울시 주최로 7년 전부터 4~10월 매주 일요일에 광화문광장에서 열렸다. 그러나 오는 6일 월요일로 날짜를 바꿨다. 행사 관계자는 "미리 허가를 받았지만 '더 중요한 행사가 있다'는 부서 요청에 따라 날짜를 옮겼다"며 "전국에 있는 농부들에게 '일요일이 아닌 월요일에 열린다'고 다시 공지했다"고 말했다. 노무현재단 관계자는 "기존에 잡힌 행사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며 "재단은 절차에 따라 사용 신청서를 제출하고 허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이 선거제 개편안과 공수처법 패스트트랙(신속 처리 안건) 지정에 맞서 서울 광화문광장에 천막 농성장을 설치 하려 하자, 좌익단체와 박원순 서울시장의 비난에 이어 서울시가 "불허 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쳐 논란이 일고 있다.


● 좌익 단체들 "자유한국당의 천막 당사 설치 저지하겠다" ●

자유한국당은 지난달 30일 의원총회를 열고 선거제 개편안과 공수처법 패스트트랙(신속 처리 안건) 지정에 맞서 국회와 장외를 넘나드는 전방위적 투쟁을 하기로 결의했다.

그러자 좌파 단체가 한국당 천막 당사 저지를 위한 '촛불 집회'를 예고했다. 촛불 집회 주최 측은 "광화문 세월호 촛불 광장을 지키자"며 이날 오후 7시, 한국당 해산과 황교안·나경원 처벌 등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겠다고 했다.


● 박원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막겠다"

이뿐만이 아니다. 1일, 박원순 서울시장은 자유한국당을 겨냥해 “서울시의 허가 없이 광장을 점거하는 것은 불법이다. 법 위에 존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며 “저는 시민들과 함께 서울시장이 갖고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단호하게 대응하겠다”고 광장 사용 불허 입장을 밝혔다.

이렇듯 박 시장이 공개적으로 여당과 문재인 대통령을 옹호하는 입장을 밝힘에 따라, 광화문광장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 '국민속으로! 투쟁본부'라는 이름으로 천막을 치고 원내·외 대여(對與) 투쟁을 본격화하려던 자유한국당 계획이 차질을 빚게 됐다.

한국당 관계자는 1일 "당초 패스트트랙 강행 처리 이후 장외투쟁을 강화하기 위해 광화문광장에 몽골 텐트 형식의 천막을 만들어 농성을 벌이려 했으나 서울시의 반대로 천막 설치가 어렵게 됐다"며 "오늘 중으로 다른 투쟁 방법을 찾아 결론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천막 농성장 설치 계획을 철회하겠다는 것이다.

광화문광장에 천막을 설치하려면 서울시에 먼저 '광화문광장 사용허가 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 서울시는 '서울특별시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를 열어 이를 심사한 뒤 승인 또는 반려한다. 심사 기간은 통상 7일 이내다. 이와 관련, 서울시 관계자는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과 통화에서 "한국당이 광장 사용허가를 신청하면 불허할 것"이라고 했다.


● 세월호 천막 14개 중 3개만 벌금 부과, '공개적'으로 저지한적 없어... 그러나 자유한국당 천막 설치는 박원순 시장이 직접 나서서 비난하며 "막겠다" ●

서울시의 불허 입장은 서울시 조례 때문이다. '서울특별시 광화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는 "서울특별시장은 시민의 건전한 여가선용과 문화활동 등을 지원하는 공간으로 이용될 수 있도록 광장을 관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여가선용과 문화활동이 아닌 정치적인 목적에 광장 사용을 승인해주기는 어렵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만약 서울시가 불허했는데도 한국당이 천막을 설치하거나, 신청서를 정식으로 접수하지 않고 천막을 친다면 변상금을 부과하고 철거를 유도할 것"이라고 했다.

앞서 서울시는 불법 시설물 논란이 있었던 세월호 추모 천막에 대해서도 변상금을 받았다고 하지만 '공개적으로 저지 하겠다'는 입장을 밝힌적이 없다. 서울시 관계자는 "세월호 천막 14개 중 정부에서 허가한 11개를 제외한 3개의 천막은 '불법'이어서, 규정에 따라 2014년부터 올해 천막을 철거할 때까지 5년간 광장 사용료 1800만원을 세월호유가족협의회로부터 받았다고 했다. 조례에 따르면 광화문광장 사용료는 1㎡를 1시간 사용했을 때 10원이고, 불법 시설물에 부과되는 변상금은 12원이다.

하지만 서울시 관계자의 말처럼 세월호 천막과 관련해선 "철거를 유도"하거나, 박원순 시장이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힌적이 없어 논란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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