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서울에서 열린 국제회의에 참석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일본이 강제징용 판결을 이유로 대(對)한국 경제 보복에 나선 것을 두고 "앞으로 대책을 연구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정부 핵심 관계자는 "상황이 유동적이라 일본의 대응을 더 지켜본 뒤 본격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말하는 등 사실상 상황을 방치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이처럼 외교·경제적 해법을 마련해야 할 부처들이 적극 나서지 못하는 것은 징용 피해자의 동의와 설득을 우선시하는 청와대의 '과거사 우선주의' 방침 때문으로 알려졌다.


● 한가로운 문재인 정부 "(일본의 제재를 두고) 수입선 다변화의 계기가 될 것" ●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국무회의에서 일본의 경제 보복 문제를 논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앞으로 수입선 다변화와 국내 생산 설비 확충, 국산화 개발 등이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지 않겠나"라고 했다. 일본의 수출 규제 방침이 발표된 지 하루가 지나고 나서 나온 설명이었다.

이 관계자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럽다. 국가 간의 문제라 더더욱 그렇다"며 "앞으로 어떤 대책을 내놓을지도 조금 더 지켜봐 달라. 지금 단계에서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이번 조치가 강제징용 판결이 원인이라는 것도 결국 언론의 해석 아닌가"라며 언론 보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 아베는 WTO 규칙까지 언급하며 제재 의지 밝혀 ●

그러나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이날 요미우리신문 인터뷰에서 자신이 취한 수출 제한 조치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의 규칙에 맞는다. 자유무역과 관계가 없다"며 "국가와 국가의 신뢰 관계로 행해 온 조치를 수정한 것"이라고 했다.

강제징용 판결에 따른 경제 보복이라는 것을 사실상 인정한 셈이다. 일본은 총리가 전면에 나섰는데도 청와대는 "관련된 입장이나 발표는 산업통상자원부를 통해 나가게 될 것"이라며 공을 경제 부처로 넘겼다.


● 문재인 정부 경제 부처들, 기업들에 "왜 이제야 알았느냐"며 타박 ●

정작 경제 부처들은 '직격탄'을 맞은 기업들에 "왜 이제야 알았느냐"며 타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언론에 경제 보복 소식이 처음 전해진 지난달 30일, 산업통상자원부는 정승일 차관과 유정열 산업정책실장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등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4사 임원들과 회의를 가졌다.

복수의 참석자는 "산업부도 사태 파악이 제대로 안 돼 있어 당황스러웠다"고 전했다. 유 실장이 참석자들에게 "기업은 언제 이 사태를 알았느냐"고 물었고 기업 관계자들은 "우리도 언론 보도로 알았다"고 대답했다. 유 실장은 "삼성이나 SK, LG는 일본에 지사도 있고 정보도 많을 텐데 사전 동향을 파악하지 못했느냐"고 했다. 한 참석자는 "기업이 먼저 알아서 정부에 보고해야 하는데 제대로 역할 못 한 것 아니냐는 말로 들렸다"고 했다.


● 문재인 정부 "우리 기업들이 나서서 일본을 소송하는 게 어떠냐?" ●

다음 날인 1일 대책회의 때도 마찬가지다. 정 차관이 "WTO에 제소한다" "국산화하자"는 대책을 말했지만, 기업 참석자들은 "맞는 말이라고 맞장구칠 수가 없어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고 말했다.

정 차관은 "우리 기업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공급 중단을 문제 삼아 소송을 거는 건 어떠냐"며 "민간 기업 간 계약 파기로 볼 수 있지 않으냐"는 취지의 말도 했다. 4개 기업은 "귀책사유가 일본 정부의 제도 변경이라 일본 기업에 소송을 걸긴 어렵다"고 난색을 표했다.


● 일본과 싸움할 준비만 하는 문재인 정부... 외교는? ●

한편 산업통상자원부 성윤모 장관이 지난 1일 "(일본이 강제징용 판결을 문제 삼는 것은) 삼권분립의 민주주의 원칙에 비추어 상식에 반하는 조치"라는 입장을 밝힌 것은 청와대 '지침'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자유한국당 정유섭 의원에 따르면, 산업부는 지난 1일 3~4개의 '장관 입장문' 후보를 청와대에 보냈고, 청와대에선 가장 수위가 높은 입장문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정 의원은 "성 장관이 사실상 청와대의 입장을 '하명 대독'한 것"이라고 말했다.

● 6월 수출 13.5% 감소, 7개월 연속 마이너스... ●


1일, 산업통상자원부는 2019년 6월 수출이 441억7900만달러로 작년 6월(510억7900만달러)보다 13.5% 줄었다고 밝혔다.

수출은 미·중 무역분쟁 및 반도체 수출 부진 등으로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6월까지 7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수출이 7개월 연속 전년동월대비 감소한 것은 2014년 10월부터 2016년 7월까지 19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한 이후 최장 기간이다.

지난해 12월(-1.3%), 올해 1월(-5.9%), 2월(-11.1%), 3월(-8.2%), 4월(-2%), 5월(-9.4%)에 이어 7개월 연속 감소다. 수입은 전년 동기 대비 11.1% 감소한 400억1000만달러로 집계됐다. 무역수지는 41억6800만달러 흑자로 89개월 연속 흑자를 이어갔다. 

품목별로 보면 반도체와 석유 및 석유화학 제품의 단가하락이 수출에 악영향을 미쳤다. 산업부에 따르면 지난 25일 기준 반도체 단가는 33.2% 감소했다. 석유화학 및 석유제품도 각각 17.3%, 11.6% 감소하면서 반도체(-25.5%), 석유화학(-24.5%) 등의 수출이 큰 폭으로 줄었다.


● 엎친데 덮친격 일본도 한국 화이트리스트 제외! 문재인과 아베 8초 악수 후 벌어진 일... ●

이뿐만이 아니다. 30일, 산케이신문은 "한국 반도체와 TV·스마트폰 제조에 필수적인 3개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를 4일부터 강화한다"고 밝혀 한국 반도체, 디스플레이 산업은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산케이는 "징용 배상 소송을 둘러싼 보복 조치"라고 썼다. 이는 대법원의 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 정부가 한국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을 겨냥한 사실상의 경제 제재인 것이다. 또한 오사카 G20 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8초 악수'를 나눈 직후에 나온 것이다.

30일 일본의 소재 수출 규제 소식이 전해지자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업체는 "화웨이 제재보다 더 큰 태풍이 몰려왔다"는 반응을 보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체는 하루 전인 29일 트럼프 미 대통령이 화웨이에 대한 일부 제재 완화 의사를 밝힌 것에 대해 "세계 반도체 시장을 위축시키는 요인이 그래도 완화된 것"이라며 반겼다. 하지만 바로 다음 날 일본 언론들이 일본 정부의 소재 수출 규제 소식을 전하자, 이들은 "산을 하나 넘었더니 더 큰 산이 닥쳤다"며 한숨을 내쉬고 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일본 정부가 곧 수출 규제를 시행하는 품목은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와 고순도 불화수소(에칭 가스), 리지스트 등 세 가지로, 일본이 세계 시장의 70~90%를 점유하고 있는 필수 소재다. 이렇게 되면 국내 반도체 업계는 해당 품목을 수입할 때마다 일본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TV와 스마트폰용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디스플레이의 핵심 재료다. 에칭 가스는 반도체 제조 공정 중 회로 모양대로 깎아내는 데 필요한 소재다. 리지스트는 반도체 원판 위에 회로를 인쇄할 때 쓰이는 감광재다. 세 가지 모두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제작에 필수적인 소재다.

또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이 군사 안보와 직결된 첨단 기술이나 전자부품의 한국 수출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라고 보도했다. 일본은 미국·독일·영국 등 27개 우방국을 '화이트 국가'로 선정해 수출 과정에서 허가 신청을 면제해줬다. 한국도 2004년 이 명단에 올랐다. 하지만 이번 규제는 한국을 명단에서 제외해 수출을 통제하겠다는 의도다. 수출 허가권은 일본 경제산업성이 쥐고 있다. 허가에 걸리는 기간은 90일 정도다. 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확보한 소재 재고량은 대략 한 달치로 추정된다. 일본 정부가 허가를 차일피일 미룰 경우 최악의 경우엔 당장 8월부터 반도체와 OLED 디스플레이 생산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소재 수출 규제는 일본 소재 업체에도 타격을 입힌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한국의 거대 기업들을 고객사로 두고 있는 일본 기업들도 타격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이번 조치가 자유무역주의에 반하는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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