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김정은이 금강산 관광시설을 현지 지도하면서 "너절한 남측시설들을 싹 들어내고 우리 식으로 새로 건설하여야 한다"고 말하자 현대그룹은 초비상 사태에 돌입했다.

현대그룹 계열사 중 남북경협사업을 전담하는 현대아산은  김정은의 금강산 관광 비판에 대해 "관광재개를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보도에 당혹스럽지만, 차분히 대응해 나가겠다"는 짧은 입장을 냈다.

노동신문에 따르면 김정은은 "손쉽게 관광지를 내어주고 득을 보려고 했던 잘못된 정책으로 금강산이 10년간 방치됐다"며 선임자들의 의존 정책을 매우 비판했다.


● 사면초가 상황... ●

김정은의 폭탄 발언 후 현대아산의 대외, 홍보, 투자 담당자들은 현황 파악을 위해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9시반 전후로 김영현 현대아산 전무 주재로 상무급 3명과 실무자들이 참석하는 긴급회의도 10~20분가량 진행했고, 이후 배국환 현대아산 사장 주재로 긴급 임원회의가 열렸다. 현대아산은 향후 현대그룹과 통일부와도 협의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한 현대그룹 직원은 "2008년 관광이 중단되고 2011년 북측이 금강산 이산가족 상설면회소를 몰수했지만, 이산가족상봉 행사와 금강산관광 20주년 남북공동행사 등이 진행되어 일말의 기대감이 있었는데 오늘 김정은의 발언으로 사업이 물거품되는 것 아니가 하는 위기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현대아산 입장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면초가의 상황"이라고 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김정은이 금강산내 남측 시설 철거를 언급하며 '합의'라는 단어를 썼다는 점이다. 김정은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시설들을 남측의 관계 부문과 ‘합의’하여 싹 들어내도록 하고 금강산의 자연경관에 어울리는 현대적인 봉사시설들을 우리 식으로 새로 건설하여야 한다"고 말했다. 북 측도 철거를 일방적으로 하지는 않겠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남측간의 합의하에 철거하겠다는 점은 여지가 남아있는 것"이라며 "현대아산이나 정부를 통해 통보가 아닌 합의를 하겠다는 만큼 만남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 현재까지 7670억원 투입... 적자 1조 5000억... ●

금강산 관광의 시작은 19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9년 1월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기업인으로처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해 '금강산 관광 개발 의정서'를 체결했다. 9년 뒤인 1998년 정 명예회장은 소 500마리를 이끌고 판문점을 통해 북한을 다시 찾았다. 같은 해 10월 아들 고 정몽헌 회장과 함께 남측 기업인 최초로 고 김정일과 면담하고, ‘금강산관광 사업에 관한 합의서 및 부속합의서’를 맺었다.

현대아산에 따르면 ‘금강산관광 사업에 관한 합의서 및 부속합의서’를 맺을 당시 금강산 해금강-원산지역 관광지구 토지이용에 대한 50년 사업권에 대한 대가로 9억4200만달러를 북 측에 주기로 했다. 이중 현대아산이 10년간 금강산 관광을 진행하며 지불한 것이 5597억원이다. 이와 별도로 현대아산이 시설 등에 투자한 것은 누계로 2268억원이다. 총 지금까지 현대아산은 금강산 사업에 7670억원을 투입한 것이다.


● 북한군 총에 맞아 숨졌던 박왕자씨... ●

하지만, 금강산관광은 누적 200만명 관광 기록을 앞두고 2008년 7월 관광객 박왕자씨가 북한군이 쏜 총에 맞아 숨지면서 전면 중단됐다. 현대아산은 2008년 금강산관광 중단 이후 10년 동안 2247억원에 달하는 영업손실을 입었다. 매출 손실 추정액만 1조5000억원이다.

현대그룹은 지난해 4월 판문점 선언 이후 남북경협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금강산 사업 재개를 희망적으로 준비해왔다. 이후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도 최근 대북사업에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현 회장은 지난 4월 판문점선언 이후 ‘현대그룹 남북경협 태스크포스(TF)팀’을 가동하면서 직접 위원장을 맡았다. 배국환 전 기획재정부 차관을 현대아산 대표이사 사장으로 영입하기도 했다.

지난해 8월 정몽헌 회장 15주기 참석을 위해 북한을 방문했던 현정은 회장은 당시 올해 안에 관광이 재개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에는 금강산관광 2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현대아산은 지난해 12월말 시설자금 350억원과 운영자금 150억원을 조달할 목적으로 주주배정 방식의 유상증자를 결정하기도 했다. 회사 측은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자금 확충"이라고 했지만, 업계에서는 남북경협 재개를 위한 목적으로 봤다.


통수 친 김정은... ●

김정은은 올 초 신년사에서도 "개성 공업지구에 진출하였던 남측 기업인들의 어려운 사정과 민족의 명산을 찾아보고 싶어 하는 남녁 동포들의 소망을 헤아려 아무 전제조건이나 대가 없이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며 금강산 관광 재개가 곧 현실화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줬다. 현대아산은 올해 2월 창사 20주년을 맞아 북한 금강산에서 8일부터 이틀간 기념행사를 열기도 했다.

올 초까지만 해도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하노이 담판’ 결렬 이후 상황은 다시 비관적인 방향으로 돌아섰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고 정주영 명예회장 때부터 여러 변수 속에서 30여년간 신뢰로 이어온 남북 경협이 쉽게 중단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면서 "섣부른 낙관을 하지 않으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다시 또 심기일전해 준비할 것"이라고 했다.이어 "특히 당국과 긴밀하게 협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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