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베트남 외교부는 오는 29일부터 12월 2일까지,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베트남에 방문한다고 밝혔다. 리 외무상은 베트남 정부에 베트남 경제발전 모델을 배우고 싶다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리 외무상의 이번 방문은 개혁·개방을 통해 경제발전을 이룬 베트남의 노하우를 전수받기 위한 목적으로 풀이된다.

베트남 외교부는 "팜 빈 민 베트남 부총리 겸 외교부 장관의 초청으로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베트남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리 외무상은 이번 방문 기간 베트남의 개혁·개방 모델 ‘도이머이(쇄신)’를 집중적으로 살펴볼 예정이다. 그는 베트남 북부 항구도시 하이퐁 등지의 산업단지를 시찰하고 경제 전문가들을 면담할 계획이다. 

명목은 그럴싸하게 붙였지만, 실제 속셈은 '적화통일 방법'을 전수 받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적화통일을 성공시켰던 당시 베트남의 상황은 현재 대한민국과 북한의 대치 상황과 너무 흡사하기 때문이다.

1968년 남베트남과 북베트남의 평화협상을 시작해 체결될 때까지 거의 5년이나 지지부진하게 끌고갔다. 현재 대한민국과 북한도 이상한 평화아래 북한의 비핵화는 온데간데 없고 경협만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남베트남과 북베트남 평화협정(?) 당시 협정의 준수를 감시하기 위해 사실상 이름뿐인 통제 및 감독을 위한 국제위원회(International Commission of Control and Supervision ICCS )가 설립되었는데, 이는 현재 국제사회가 대한민국과 북한의 평화협상을 지켜보고 있는 것과 상당히 유사하다.

협정 체결 당시 남베트남 정부는 영토의 약 80%, 인구의 약 90%를 통치하고 있던 사실을 ‘인정’ 받았다. 협정문은 ‘미국을 비롯한 4개 당사자 모두는 1954년의 제네바협정이 약속한 상대방들의 독립, 주권, 통일성, 그리고 영토적 일체성을 존중하기로 약속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런데 법률적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보아도 이 문서는 당시 환경에서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의 공산주의자들인 베트콩에게 승리를 가져다줄 것이 뻔한 협정이었다. 남베트남 사람들의 운명은 자신들 스스로 선거에 의해 결정하게 될 것이라는 그럴듯한 말이 있기는 했다. 또한 남베트남이 북베트남의 무력침략을 막기 위해 무기를 요구할 경우 미국은 낱개로(Piece by piece) 혹은 1대1 대체 방식(one-to-one replacement basis)으로 제공하겠다고, 도무지 믿기 어려운 약속도 포함되어 있었다. 미국이 손때기 시작했단 명백한 증거였다.
  
결국 현실로 판명되었지만 남베트남은 파리협정에 동의함으로써 자살의 길을 택한 꼴이 되고 말았다. 미국이 전쟁에서 손을 떼기 시작한 이후 북베트남은 마음 놓고 남베트남을 공격할 수 있게 되었다.
  
1975년 2월 13일 북베트남은 마지막 총공격을 단행하기 시작, 그해 4월 30일 남베트남의 대통령궁을 점령, 적화통일을 달성했다. 남베트남이 북베트남에 군사적으로 흡수 통일당하는 날 사이공의 대통령궁에 진입한 탱크는 북베트남의 정규군이 남베트남을 공격하기 위해 동원한 320대의 탱크 중 단 한 대였다.
  
베트남전쟁은 북베트남의 지원을 받는 남베트남의 공산게릴라가 시작한 전쟁이었지만 북베트남의 정규군이 마무리한 전쟁이었다. 이는 내부의 적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보여준다. 요즘 대한민국에 빨간이들이 어디에 있냐는 비아냥대는 듯한 말을 한다. 그러나 비아냥 대기에 앞서 베트남의 적화통일 과정을 보는 것이 먼저이지 않을까?

또한 마지막 대공세에서 북베트남은 육군 사단 대부분을 남침 공격에 투입했었다. 남베트남의 수도 사이공을 둘러싸고 있는 제3군단 전술지역에만 북베트남군 16개 사단이 집결되어 사이공 함락작전을 전개했다.

그러나 싸울 의지도 없었고, 전략적 판단 능력도 결여되었던 남베트남은 미국이 손을 털기 위한 목적에서 고안한 파리평화협정을 받아들이는 우를 범했고, 이후 대략 600만명이 교화소로 보내져 죽임을 당했고, 100만명이상이 보트피플로 바다 또는 타국에서 생을 마감했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도 '자국민 우선 정책', '팍스 어메리카'를 실현하기 위해 중국 러시아 등 사회.공산 주의 국가들과 협상에서 위같은 선택을 하지말란 법도 없다.

쉽게 말해 트럼프 대통령만 믿다간 큰 낭패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린 지난 베트남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대비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그저 그런 역사로 치부한다면 적화의 먹잇감이 되는 건 시간 문제일 것이다.

이렇듯 역사는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진영간에 냉전시대를 거쳐 신新 냉전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하지만 역사를 비웃듯 탈이념을 논하며, 이념을 구시대의 전유물로 치부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

그러나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싸움은 인류가 숨쉬는 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경계하고 기억하라. '반공'을 잊는 순간 공산주의의 먹잇감이 되어 자유대한민국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임을. 잊지마라 '반공'.

3일, 정부 고위 관계자는 4.27 남북정상회담 중 도보다리 산책에 이은 벤치 대담 자리에서 김정은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베트남식 모델로 가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고 매일경제는 전했다.

이 관계자는 "두 정상이 베트남 이야기를 많이 했다"며 "베트남은 경제적으로는 중국보다 자본에 대한 통제가 덜하고, 정치적으로는 미국과 보다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김정은은 (아직 젊기 때문에) 동아시아의 리더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경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상회담 직후에도 청와대 일각에서 북한이 베트남식 개혁.개방을 추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노무현정부 당시 통일부 장관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주도했던 정동영 민주평화당 의원도 회담 직후 "북한이 베트남식 개혁.개방의 길을 모색 중"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이 관계자는 "북한은 이미 베트남식 개혁·개방과 관련한 연구를 상당히 축적한 상태"라고 말했다. 해외 자본을 획기적으로 유치하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필수적이므로, 비핵화를 조건으로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추구할 것으로 보인다.

이 관계자는 또 "북한은 주한미군을 원한다는 이야기를 이번에 했다"며 "북한은 주한미군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고 밝혔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주한미군이 주둔하는 편이 오히려 낫다는 것이다.

그는 "북한은 미군을 주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지정학적으로 가까운 나라가 주적이 되지, 먼 나라가 주적이 되는 경우는 없다. 미국은 주적이 될 이유도 필요도 없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다가오는 미·북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이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할 가능성이 지극히 낮다는 것이다.

한편, ‘도이머이’로 불리는 베트남식 개혁·개방은 정치적으로 공산주의의 기본 골격을 유지하면서 경제적으로는 시장을 개방하고 해외 자본을 유치해 시장경제 자본주의를 접목시킨 정책이긴 하나, 결국 월맹이 기습으로 일으킨 내전으로 자유월남은 패배했고 ‘적화통일’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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